제가 스페인 시부모님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에는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받은 날이기도 했답니다. 며느리 된답시고 인사하는 자리에서 부모님께 잘 보이려고 별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작은 충격이랄까요? 시부모님께서 요리를 하시고 식사 준비를 하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도와드릴게요, 어떤 도움이 필요하세요?"하고 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가장 놀랐던 점이 시아버지께서 손수 음식을 준비하신다는 거에요.
시아버지께서는 교육학과를 나오셔서 학교 선생님으로 취직하셨던 22살(한국 나이 24살)에 결혼을 하셨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맞벌이 직업 여성이셔서 일을 하셨지요. 결혼 후 두 분이 처음으로 직장을 다녀온 후, 시아버지께서 그러십니다.
"오늘 저녁은 무슨 요리야?"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그러셨다네요.
"(평생) 얻어먹을 생각을 마라,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신이 해라." 라고 말이지요.
두 분이 같이 직장을 다니시고, 같은 수준의 피곤함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같이 요리해야 하는 것이 최상의 답이라고 생각하신 어머님께서 결혼 초에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 후로, 이렇게 시아버님께서는 평생 어머님과 함께 같이 살림하시고 요리를 해오셨답니다.
이렇게 살림을 직접 하시는 모습이 저에게는 참 큰 충격이었답니다. 그때까지 저는 친정 아버지도 그렇고, 남동생도 그렇고, 집안일은 도무지 하지 않는 모습이 한국 남자의 전형적 모습으로 세계 모든 남자들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이번에 쌍둥이 세 돌 생일을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더니, 이렇게 두 분이 직접 생일 파티용 간식을 마련해놓으셨습니다.
전화로 여러 번, 우리가 도착하면 준비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에도 이렇게 손수 준비를 하셨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고집을 부리시면서, "정년 퇴직한 두 늙은이가 할일이 없어서 그래, 우리가 하겠다는데 자꾸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지!"라고 말이지요.
위의 사진은 스페인의 소브라아사(Sobrasada) 고추장(?)입니다.
2014/10/22 - [스페인 이야기] - 고추장이라고 오해한 스페인의 이 음식, 알고 보니 반전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위의 제목을 링크하세요!
하몽과 스페인 쿠라도(Curado) 치즈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발효하여 냄새가 된장만큼이나 구수한 치즈이지요.
안초비를 숨긴 치즈와 빵입니다.
오븐으로 구워낸 엠빠나다(Empanada)입니다. 속으로 참치와 토마토 버무린 양념을 넣었지요.
이번에 시어머님 이가 몽땅 빠져 아무 것도 드실 수 없는지라 시아버님께서 이렇게 소소히 준비를 하셨습니다. 빵도 부드러운 것으로 준비하시고요, 스페인에서는 보통 딱딱한 바게트 빵을 먹는데, 이 날은 아버님께서 빤 데 레체(Pan de leche)를 준비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먹기에 부드러운 우유빵의 일종이랍니다.
"자! 자리에 어서 앉아야지!"
아이들 먹거리를 다 챙기신 후에는 이렇게 사진기를 꺼내어 추억의 앨범을 만드실 작정이십니다.
"할아버지를 봐!"
어머님께서 준비하신 하트 케이크입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누리, 사리...... 생일 축하합니다."
누리아와 사라를 애칭으로 우리 가족은 누리, 사리라고 부릅니다. 산들이는 산드리라고 부르고요. ^^
공동 케이크를 받아든 우리 쌍둥이 공주들이 촛불을 후우우우 하고 붑니다.
불을 켜고 어두운 실내가 환해졌어요. 바로 요런 케이크였구나.
이렇게 우리는 오후 한 나절 스페인 시부모님께서 준비해주신 맛난 생일 간식을 먹고 시간을 보냈답니다.
요즘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하나씩 임플런트 이를 해넣고 있으십니다. 스페인에서는 한국처럼 치과가 그렇게 신속하게 돌아가지 않으므로 이가 다 완성되기까지는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네요. ㅠㅠ 시어머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식만 드셔야하니 시아버지께서도 같이 부드러운 음식을 드신답니다.
40세에 갑상선암에 걸리신 우리 시어머님을 수발을 해오신 시아버님은 이번에도 정성스럽게 시어머님을 보살피십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커피도, 하몽도 드시면 안 된다고 하시니 시아버님은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도 하몽도 끊으셨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정성 지극한 두 노부부이십니다.
앗! 이 사진은 위의 글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
산똘님과 동생이십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웃고 있어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두 사람이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두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아저씨 다 됐네요. 젊었을 때에는 미소년으로 소문이 나있던 우리 서방님이신데......
거울이라고 했던 두 사람의 유머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네요.
이렇게 우린 생일 간식 파티를 마치고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다했지요. 시부모님께서는 어느새 제가 신경 쓸 틈도 없이 후다닥 식탁에 있던 그릇이며 음식을 정리를 하셨답니다. 시아버지께서 설거지를 다 하시고, 제가 도와드릴 틈도 없이 틈을 주시지 않았네요.
"그동안 못 봤는데, 못다한 이야기나 해!" 하고 떠미시는 두 시부모님......
오늘도 참 많은 것을 배웠네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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