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이웃

'삶의 풍요'를 가르쳐 준 그리운 내 친구

산들무지개 2019. 1. 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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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온라인 서점에 속속 등록되면서 참 많은 감회가 오가고 있답니다. 이미 여러 번 책 이야기를 해서 여러분께 피로감을 드리는 것은 아닌지, 좀 조심스러워지기도 하답니다. 아마도 공감 부탁이 불편하셨다는 독자님도 피로감을 느껴 그런 소리를 하신 듯 싶고요. 그래서 글 쓰는 데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요즘입니다. 

출판사에서 출간 전 연재 시리즈를 하는데요, 오늘 토요일에 특별한 에피소드 하나가 나갑니다. "만담꾼 페페 아저씨와 장작하기"입니다. 

페페 아저씨 소식이 궁금하신 분이 몇 분 계실 것 같아서요. 

벌써 1년이나 더 된 에피소드였죠. 페페 아저씨가 암투병생활을 하신다는 소식이었죠. 우리 페페 아저씨는 정말 멋진 분이시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즐거운 자급자족 생활철학을 가지신 분이시죠! 물론,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욕도 막~ 하는 욕쟁이이기도 하고요. ^^; 제 책에는 페페 아저씨와 함께한 인연이 참 많이 나온답니다. 

그럼 소식 전할게요. 


페페 아저씨가 직접 지어 올린 집, 이 집을 떠나 발렌시아에서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8월 발렌시아의 뜨거운 햇살이 정오를 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그날 아침 바람은 매우 선선했습니다. 3층 페페 아저씨가 투병 생활을 하는 그곳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방문했어요. 마침, 페페 아저씨 고향인 카디즈(Cadiz)에 다녀왔다며 자랑도 할 겸, 건강 상태가 어떤지도 무척 궁금했답니다. 

아저씨는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발코니 베란다 난간에 긴 차양을 밖으로 빼 그늘에서 살랑이는 아침 바람을 즐기고 계셨어요. 아저씨는 작은 잉어 두 마리를 기르는 토분 안에 먹이를 뿌리고 계셨어요. 물에 반사된 빛이 아저씨 얼굴을 환하게 비추어 상태를 말해 주는 듯했죠. 활짝 웃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반가운지......! 

"빨리 와. 여기 잉어 좀 봐. 두 마리가 얼마나 조화롭게 지내는지 귀여워 죽겠어. 여기 분재 화분도 봐. 잉어와 분재 식물이 환상적이야." 

평소에도 분재 화초를 가꾸며 투병 생활을 극복하시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는데, 화초가 힘을 받고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듯했죠. 

"우와~! 페페 아저씨! 얼굴이 정말 좋아지셨어요. 정상적인 모습인데요? 아프지 않을 때와 똑같아요!" 

사실, 암에 걸린 아저씨가 화학 치료한다고 약을 많이 드셨을 때는 얼굴이 붓고 온몸이 무거워 보였어요. 그런데, 그날은 얼마나 가볍고 환해 보였는지......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답니다. 

"응~! 정말 좋아졌어. 나도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어. 내가 힘들어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내가 힘들어하면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니까 그 모습 보는 것도 고통이더라. 좀 힘들면 약 먹으면 되니까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지!"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저것 또 수다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해발 1,200m의 스페인 비스타베야 소식과 우리 텃밭 이야기, 산드라 종이접기 이야기, 쌍둥이 학교생활까지 두루두루 이야기했답니다. 

아저씨가 사랑으로 키우는 앵무새도 우리 수다에 한 소리 하면서 말입니다. 화학 치료의 힘든 그 과정도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소와 같이 웃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전과 같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답니다. 


그날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간 줄 모르게 또 헤어지는 시간이 왔죠. 

"아저씨! 이거 받으세요~!" 

하고 제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손에 꽉 쥐여 드렸습니다. 작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친구분과 맛있는 거 사드시고, 어서 회복하세요!" 하고 말입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저는 이런 순간이 매우 좋더라고요. 아저씨 손을 꽉 잡아드릴 수 있고, 어떤 응원의 에너지를 드릴 수 있어서 말이지요. 

이럴 때마다 마주치는 아저씨 눈빛도 정말 좋습니다. 그날 활짝 웃으시면서 제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이럴 필요가 없어~!" 

"아니, 아니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우리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답니다. 또 만나면 더 기쁠 그 날을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2주 후, 아저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이제 이럴 필요가 없다는 아저씨의 말씀이 마지막 인사였다는 걸 부고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사진이라도 같이 찍어 둘 걸~. 그날 더 오래 아저씨를 맘껏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날 더 따뜻한 이야기라도 나눌 걸~.' 하는 온갖 후회가 오가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고요. 차마 아이들 앞에서 슬픔을 보일 수 없어 참았지만, 아이들은 엉엉 소리 내 울면서 그 여름을 길게 아파했습니다. 

▲ 추운 겨울을 보내는 페페 아저씨의 분재 식물


그래서 여러분께 고인이 된 페페 아저씨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 페페 아저씨는 자신이 태어난 날 이후의 책은 전혀 읽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옛날 책만, 고전만 읽는 분이시죠. 요즘 책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온갖 욕설을 다 하시면서 말이에요. 그런 아저씨가 제가 책을 낸다고 하니 제 책은 꼭 볼 거라고 하셨어요. 한글을 배워서라도 다 읽고야 말겠다고 하셨는데...... 그날은 결국 오지 않았네요. 

결국 책을 품에 안겨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책이 출간되면 페페 아저씨가 잠드신 농가에 방문하여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페페 아저씨는 '마음의 가치'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가르쳐주신 스페인 이웃이자, 친구입니다. 우리 부부가 정착하여 잘 살 수 있도록 옆에서 물심양면 도와주신 분이기도 하시죠. 키가 작고 코미디언처럼 웃기지만, 마음의 풍요를 선물한 친구이기에 언제나 그립습니다. 

페페 아저씨의 이야기, 출간 전 연재로 한 번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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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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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들 읽으시고, 힐링 받으세요~~~/산들무지개

고맙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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